병으로 모든 것이 바뀌는 순간
암 진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이제는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한다.
치료가 시작되면 일상은 무너지고, 사회적 역할은 줄어들며, 거울 속 모습도 낯설어진다.
통증, 탈모, 체중 변화, 면역력 저하... 이런 신체 변화는 단지 외형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진다. “내가 나인지 모르겠다”, “병이 곧 나인 것 같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암이라는 질병은 육체만 아프게 하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의문과 자기 상실을 야기하며, 자존감이라는 심리적 기반을 흔들어 놓는다.
정체성 위기란 무엇인가?
심리학에서는 정체성(identity)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일관된 감각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외모나 직업, 건강만이 아닌 내가 나임을 느끼는 근본적 자각이다.
암 환자들은 질병을 겪으며 종종 그 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엄마였다” → “이젠 돌보는 게 아니라 돌봄을 받는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 하지만 “이젠 쉬어야만 한다.” 등의 이런 변화는 역할 상실 → 자아 혼란 → 자존감 저하의 순서를 거친다.
자존감이 회복될 때, 치료의 질이 다르게 느껴진다
자존감(self-esteem)은 단순히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다. 고통 중에도 여전히 나를 믿는 감각,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인식이다.
자존감이 유지될 때, 치료는 ‘나를 위한 선택’이 된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을 때는 치료조차 “해야 하니까 하는 일”로 느껴진다. 회복 속도와 삶의 질 역시 차이가 난다.
명상을 통한 정체성 회복, 나의 존재 회복 훈련
명상은 질병 속에서 잃기 쉬운 중심을 되찾는 도구다. 그중에서도 ‘정체성 유지 명상’은 병과 나를 분리시키는 훈련이다.
질병은 나의 일부일 수 있지만, 내가 전부는 아니다. 이 명상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나는 병이 아니다” → 병을 내 정체성에서 분리한다.
- “나는 여전히 나다” → 현재의 감각으로 존재를 확인한다.
-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의미 있다” → 자기 존엄의 가치를 회복한다.
실전 루틴: 정체성 유지 명상 가이드
하루 10~15분 정도의 시간, 조용한 공간에서 실천 가능하며 수술 전후, 항암치료 중, 감정이 흔들릴 때 특히 효과적이다.
1단계: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호흡
- 등을 곧게 세우고 복식호흡을 시작한다.
- 숨을 들이쉴 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 숨을 내쉴 때: “나는 나다”라는 문장을 속으로 반복한다.
2단계: 병과 나를 구분하기
- 속으로 말한다: “병은 내 안에 있지만, 내가 병은 아니다.”
- 병이 위치한 부위를 이미지로 그려보고, 그 옆에 자신을 따로 상상한다.
- “이건 내 일부일 뿐, 나는 더 큰 존재다.”라는 문장으로 구분을 강화한다.
3단계: 정체성 되새기기
- 내가 소중히 여기는 나의 특성 3가지를 떠올린다. (예: 따뜻함, 창의성, 유머)
-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나에게 한다
- “나는 지금도 소중한 사람이다. 존재만으로 가치 있다.”
4단계: 치유적 이미지와 연결
- 건강할 때의 자신을 떠올리기 → 병 이전의 기억과 연결한다.
- 현재의 모습에 희미하게 겹쳐보며 “나는 여전히 나다”라고 속으로 말한다.
- 그 이미지를 마음속 ‘정체성의 등불’로 저장한다.
보조 전략: 나를 다시 찾아가기
- 사진 보기: 건강할 때 찍은 사진, 웃고 있는 얼굴을 자주 보며 정체성을 회복한다.
- 일기 쓰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 칭찬 일기: 매일 나에게 해주고 싶은 칭찬 1가지 쓴다.
- 작은 루틴 지키기: 병원 외에도 “나의 일상”을 구성하는 한 가지를 지속한다. (산책, 독서 등)
유식불교와 존재 심리학이 전하는 메시지
유식불교에서는 “모든 법은 오직 식(마음)의 전개일 뿐이며, 모든 고통은 ‘나’를 잃었을 때 생긴다.”라고 말한다.
존재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역시 “삶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도, 마지막까지 남는 자유가 있다. 바로 나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라고 말했다.
정체성 명상은 바로 이 태도를 회복하는 길이다. 고통이 나를 결정하지 않도록, 병이 나를 규정하지 않도록, 존재의 자리를 되찾는 시간이다.
결론: 나는 나다
치료의 과정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은 가장 고귀한 싸움 중 하나다. 병은 우리의 육체를 시험하지만, 우리의 영혼과 정체성을 지배할 수는 없다.
“나는 나다.” 이 짧은 말은 위로이자 선언이며, 치유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당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자. 병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며,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