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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의 뇌과학적 기초 (뉴런, 뇌 연결, 인지 특성)

by me-kang 2025. 5. 9.

여러가지 색상의 조그만 모형들 사진

 

자폐증(ASD, Autism Spectrum Disorder)은 단순한 심리 문제나 사회성 결여가 아니라, 뇌 구조와 기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발달 신경장애다. 최근 뇌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자폐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수준의 변화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뉴런 차원에서의 이상, 뇌 영역 간 연결성의 불균형, 자폐 특유의 인지 처리 방식까지 뇌과학적으로 자폐증을 살펴보기로 한다.

뉴런과 시냅스, 자폐와 뉴런의 성장 차이

뇌의 가장 기본 단위는 뉴런이다. 자폐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뉴런이 어떻게 연결되고 신호를 주고받는지가 핵심이다. 자폐인의 뇌에서는 시냅스 수가 일반인보다 지나치게 많거나, 제거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연구가 많다. 시냅스는 뉴런 간 정보를 주고받는 접합점인데, 성장기 초기에 '시냅스 가지치기(pruning)'가 잘못되면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mTOR 신호경로라는 단백질 합성 시스템이 과활성화되면 뉴런이 지나치게 성장하거나 필요 이상의 시냅스가 유지된다. 이로 인해 감각 처리, 주의 조절, 정보 해석에 과부하가 걸리는 경향이 생긴다. 예컨대 자폐 아동이 특정 소리에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감각 과잉 또는 결핍 반응을 보이는 건 이런 신경 수준의 이상 때문일 수 있다. 또한 GABA 신경전달물질의 억제 기능이 떨어지면, 흥분성 뉴런의 활성도가 높아지며 뇌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향도 강해진다. 뇌가 항상 경계 상태로 유지되는 셈이다. 결국 자폐의 시작점은 뉴런의 연결 방식, 시냅스의 양,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같은 미시적인 뇌 기능에서부터 나타난다.

뇌 연결성, 장거리 연결은 약하고, 단거리 연결은 강하다

자폐인의 뇌는 전체적인 연결 패턴이 다르다. 정상적인 뇌는 먼 거리 영역끼리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자폐인의 뇌는 장거리 연결이 약하고, 단거리 연결은 오히려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이걸 ‘과로컬 연결성과 저글로벌 연결성(hyper-local vs. hypo-global connectivity)’이라고 부른다. 장거리 연결이 약하다는 건 예를 들어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에서 정보가 잘 오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전두엽은 계획, 의사결정, 사회적 판단을 담당하고, 측두엽은 언어와 감정 인식을 맡는다. 이 둘이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반면, 감각 정보가 들어오는 1차 감각피질과 그 주변의 단거리 영역은 너무 강하게 연결돼 있어서 특정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런 과도한 연결은 반복 행동, 집착, 강박 같은 특성으로 이어진다. 어떤 자폐 아동이 선풍기 날개만 몇 시간씩 바라보는 이유도 뇌가 그 감각 정보를 통합하지 못하고 하나에 집착하는 구조 때문일 수 있다. fMRI나 DTI 같은 뇌영상 장비로 자폐인의 뇌를 보면 실제로 전반적인 네트워크가 불균형하게 연결된 모습이 확인된다. 이런 연결성 패턴은 자폐의 사회성 결여뿐만 아니라, 언어 지연, 감각처리 이상, 반복 행동 등 거의 모든 주요 증상과 직결된다.

인지 처리 방식, 전체보다 세부에 집중하는 뇌

자폐인의 인지는 '전체보다는 세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얼굴을 보면 일반인은 표정 전체에서 감정을 읽지만, 자폐인은 눈, 코, 입 같은 개별 부위만 본다. 이걸 ‘약한 중심일관성(Weak Central Coherence)’이라고 한다. 정보를 종합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약하다는 뜻이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인지 처리의 불균형이다. 감각 정보 자체는 빨리 받아들이지만, 그걸 통합하거나 응용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건 앞서 설명한 뇌 연결성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뇌가 빠르게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것을 의미 있는 패턴으로 조합하지 못하면 현실 판단이나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 특성은 때론 강점이 되기도 한다. 반복적인 작업, 세부적 분석, 시각 정보 처리에서 자폐인은 높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유명한 예로 수학 천재, 음악 천재, 계산력이 뛰어난 서번트 증후군 사례들이 있다. 자폐인의 뇌는 효율성보다는 정확성과 디테일에 집중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병이 아닌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사람마다 뇌가 다르게 작동하며, 자폐도 그중 하나의 뇌 작동 방식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결론 - 자폐는 뇌의 또 다른 작동 방식이다

자폐는 뇌의 병이 아니라 뇌의 다른 작동 방식이다. 뉴런의 시냅스 구조, 뇌 영역 간의 연결성, 인지 처리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뿐이다. 이 차이들이 사회적 의사소통이나 반복 행동 같은 자폐의 주요 증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건 ‘비정상’이 아니라 ‘비표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뇌과학은 자폐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다. 자폐인의 뇌는 어떻게 다르게 연결되고 반응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지를 알면, 그에 맞는 교육과 지원도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자폐를 ‘고쳐야 할 장애’가 아닌 ‘존중해야 할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